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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74
2015년 02월 11일 16시 28분  조회:1852  추천:0  작성자: 죽림

731□달넘세□신경림, 창비시선 51, 창작과비평사, 1985

  관심이나 논조가 <농무>와 비슷한데, <농무>는 냉정하게 보여주는 수법이 주를 이루었는데, 여기서는 말하는 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섰다. 그 말하는 이의 자격과 관심이 남들로부터 무리한 발설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어떤 선이 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데, 격렬한 발언이 판을 치던 당시에는 차분했을 어조가 지금 보니 성급한 부분이 적지 않고 관념성에도 약간 경도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런 논조에 일조하는 것이 민요의 가락 속으로 들어간 신념이다. 민요는 지루한 맛이 있고 그 노래의 당사자들이 보는 세계관을 싣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장을 새롭게 담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이 주제를 밀어붙여서 몽롱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바로 이 단점이 주제의 불투명성을 초래하고 있다. 여러 모로 <농무>의 뒷심을 넘어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4337. 8. 3.]

 

732□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9, 문학과지성사, 1981

  아마도 한국에서 이상의 유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시인일 것 같다. 이상이 타고난 바가 많다면 오규원은 일부러 택한 것이기가 쉽다. 사물과 세상의 한 측면만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그 시각의 확고함은 동일하다. 색은 공과 다르지만 색이 곧 공이기도 해서 그 중 어느 하나를 천착하면 나머지가 저절로 드러나는 이치를 둘 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움직임보다는 움직이는 것들을 못 움직이게 만드는 세계의 경직성과 거기에 매몰되어 가는 자아와 세계의 모습을 잘 포착해내는 것이다.

  다만 그런 시각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만행이 시작된다는 점을 말한다면 그것은 시인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일까? 만행은 관념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 없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만행 직전까지 가까스로 이른 공의 세계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세계는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깨달음을 구현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의연히 있을 따름이다. 그것에서 허무와 죽음을 읽고 경직성을 읽는 것은 인간의 운명일 뿐이다. 이 시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가? 그냥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인가? 하지만 말하는 태도는 그것을, 그리고 인간을 경멸하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여러 가지 장치 뒤로 숨으려고 하고 있지만, 풍자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풍자는 날카롭기는 하지만 그 바탕이 무기력에 있다. 뛰어난 개인의 면벽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면벽 저 뒤쪽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약동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서도 일부러 모른 체한다면 마주한 것은 그냥 벽일 뿐이다. 한자 역시 캄캄절벽이다.★★★★☆[4337. 8. 3.]

 

733□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동천사, 1987

  바다에 관한 시로는 이만 한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겠다. 그 만큼 바다가 주는 풍경과 내면의 의식이 아주 잘 어울려서 한 세계를 이루었다. 바다에 대한 수사보다는 바다와 어울린 시인의 사고와 삶이 잘 드러났다. 그리고 성산포라는 한 지역에서 바다를 바라본 시각 또한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시의 주제가 개인의 내면으로 고정되면서, 성산포라는 지명이 갖는 신화의 세계라든가 환경, 나아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다. 그렇기는 해도 바다가 일으키는 무한한 상상력과 그것이 영혼에 어떤 울림을 주어 삶의 깨달음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4337. 8. 4.]

 

734□고슴도치의 마을□최승호, 문학과지성시인선 46, 문학과지성사, 1985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들이 설정된 주제를 풀어내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음질치는 역동성이 잘 살아있는 시집이다. 이미지란 모름지기 이렇게 풀어져야만 한 오리 의혹도 없이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시집 전체의 주제가 악마주의랄까? 아니면 해골주의랄까? 비참주의랄까? 비참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삶을 요소요소에서 잘 비추었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는 좀 인색한 편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끌어야 한다는 어떤 자부심 내지는 선민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보여주기 수법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우회의 방법이 때로 갑갑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파헤치고자 하는 공격성을 제공하는 삶의 근원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했을 법도 한데, 그 부분을 도외시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문학이 삶이 아니기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4337. 8. 4.]

 

735□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이재무, 문학과지성시인선 89, 문학과지성사, 1990

  세부 묘사에 대한 성실성이라든지, 함부로 말하지 않고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태도가 아주 좋은데, 아쉬운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마음이 너무 앞선 시집이다. 그래서 이미지를 잘 끌어가다가도 끝내 참지 못하고 할말을 해버리고 만다. 할말을 해야 할 곳에서 해야 이미지도 살고 시도 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 말을 하면 그건 그냥 말일 뿐이다. 시에서 말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리한 연상과 비유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길로 걸어나온다든가 하는 것은, 하자면 안 될 것은 없지만, 해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시접 전체에서 걸러버렸으면 하는 시들이 많다. 개인의 체험을 시 속에 끌어들일 때는 자신의 감정이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동의 근원을 독자보다 먼저 내가 토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양한 표현력을 갖추었는데도 여러 가지로 아쉬운 시집이다.★★☆☆☆[4337. 8. 4.]

 

736□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박라연, 문학과지성시인선 98, 문학과지성사, 1990

  시를 쓰는 방법의 확고함에 눈에 띈다. 비유를 바탕으로 한 동일시의 기법이다. 이 기법은 가장 구태의연한 방법이면서도 시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실험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도 찾기 어렵다. 다만 비유의 찾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좀 게을러지기 쉽고, 또 다작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자신의 말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방법의 한계이다. 드러내고자 하는 원관념이 보조관념과 무리 없이 만나서 한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체험이 특수하므로 그 특수함을 어떻게 보편화시켜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좀 소홀하여 자서전 비슷한 시들이 많다. 나에게 절실하다고 해서 독자들까지 그러리라고 추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앞부분의 몇 편이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서 너무 빨리 시집을 낸 경우이다. 뒷부분의 습작기 시들은 없느니만 못하다.★★☆☆☆[4337. 8. 4.]

 

737□시집□정남식, 문학과지성시인선 99, 문학과지성사, 1990

  사람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명멸한다. 그런 명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이해하는 한 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혼자 이해하고 마는 것이라면 몰라도 어떤 예술의 형태로 드러날 때는 그런 명멸의 흔적들을 재배치하게 된다. 그것은 곧 질서를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질서의 흐름을 타지 않고서는 예술로 올라서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게 하는 시집이다. 왜 이런 시를 썼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미 박남철 같은 훌륭한 전위를 체험한 사람에게 이 시집은 너무나 박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의 시 몇 편은 그저 말장난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지경이다. 시 같은 않은 시를 체험하게 하려 한 의도라면 지금 나와있는 수많은 시집에서도 그런 체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같잖은 시집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박남철의 경우, 시에서 정신의 절실함이 절절하게 우러난다. 형식이 일그러진 시들의 대부분은 그런 절실함이 무언가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집에서는 그런 절실함 대신 장난끼가 너무 많이 느껴진다. 시에서도 장난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장난을 위한 장난 같은 장난은 파괴력이 둔해진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것도 시에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피차 할말이 없는 일이다. 전위에 한자가 꼭 필요한가 역시 생각해볼 일이다.★☆☆☆☆[4337. 8. 5.]

 

738□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92, 문학과지성사, 1990

  내 안에 또 다른 <너>를 설정하여 그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내 안에 누적된 체험과 사고를 풀어내는 방법을 택한 것만으로도 이 시인의 경륜과 방법의 확고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들이 모두 고른 화법과 고른 수준을 보여주는 비결을 얻게 된다. 다만 <너>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사실 이 <너>는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면 시 세계 역시 무한하게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체험의 극히 제한된 부분만을 묘사함으로써 <너>라는 말의 상징성이 갖는 풍부한 함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가 특별히 처지는 것이 없으면서도 천편일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따라서 <너>의 내용을 넓히고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은 시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에 대한 집착이 좁고 강하기 때문에 시들이 <너>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서 정작 세부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표현의 신선함 같은 것이 다소 미흡한 형편이다. 한자는 어찌됐든 칭찬 받을 일이 못 된다.★★☆☆☆[4337. 8. 5.]

 

739□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214, 문학과지성사, 1998

  이제야 읽을 만한 수준까지 왔다. 불필요한 말이 많이 없어지고, 제시한 것에 울림을 만들어서 독자가 주제를 유추하여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시의 영역에 아주 많이 접근했다. 그러나 시가 되지 않을 것들을 붙잡고 불필요하게 집착하는 것이나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해서 애써 이룬 맛을 깎아먹는 버릇은 여전하다. 필요한 것들만 남아서 할 말만 하는 시의 절제력이 더 필요하다.★★☆☆☆[4337. 8. 5.]

 

740□그 나라 하늘빛□마종기, 문학과지성시인선 106, 문학과지성사, 1991

  시의 세계가 허황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찾아낸 소재를 꼼꼼하게 기록한다는 점에서 시인의 성실성이 한 눈에 드러난다. <빈센트의 추억> 같은 작품은 오래 기억할 만한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시인이 한국에 살지 않고 오래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참고하면 한국에서 시를 쓰는 사람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노력을 들였을 것으로 보아, 시로 혼자서 이 정도의 수준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쳐줄 일이다. 다만 시들이 대부분 소품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아서 시가 장황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한자 역시 흠이 된다.★★☆☆☆[4337.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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